나는 지금 아그라에 있다. 타지마할의 도시. 지난 9일 저녁 델리로 인도에 들어와 바라나시, 카주라호를 거쳤다. 여행 중간중간 틈틈이 블로그 포스팅을 하려고 노트북도 가져왔는데 정작 10일도 지난 이제야 처음 글을 쓴다. 지금 꽤 피곤하고 늦은 시간이라 이 글을 다 쓰고 잘 지도 확실치는 않다. 지금까지의 적지 않은 여행 경험으로 봐서는 3~5일에 한 번은 쓸 줄 알았는데, 쉽지 않다. 사실 델리에서 4일차 밤에 한 번 쓰려고 했다. 근데 와이파이가 안 터졌다. 이동시간이 기차에서 쓸까 했지만 야간에는 자느라 바빴다. 주간에는 괜히 표적이 될까봐 노트북을 꺼내기가 꺼려졌다.
너무나 편한 아그라 스탑 호스텔
지금 드디어 여유가 되어 노트북을 꺼낸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에이티브 느낌 드는 계단형 소파베드에, 반은 눕고 반은 앉은 내가 좋아하는 자세로. 와이파이도 빵빵 터진다. 신호가 잘 잡혀도 속도가 느린 인도에서,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큰 불편함 없이 인터넷을 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의 소중함, 인도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다.
포스팅은 여행기보다는 이 곳에서 느끼는 점에 대한 내 생각을 쓰고 싶었다. 뭘 보고 뭘 먹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걸 통해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다. 인도는 느낄 건덕지를 참 많이 제공해주는 나라다. 인도 이전에 20개 정도의 나라를 가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 사는 곳은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었다. 맨 처음 스물한살 때 유럽에 나가면서 기대했던 것은 다른 곳의 차별성을 배우고 싶었다. 이후 20대 동안 여러 나라를 다니고, 여러 외국인을 만나면서 배운 것은 정작 보편성이었다. 약간의 자연 환경과, 그로 인해 생겨난 약간의 문화가 다를 뿐이지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더라.
인도는 아니었다. 공항에서 메트로를 타고 뉴델리역까지 갈 때만 해도 비슷했다. 하지만 뉴델리역에서 내린 순간 나는 길 하나도 제대로 건널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너무나도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말로만 들어온 인도였다. 그 혼란이 오히려 흥분되었다. 외국에 나가서 느낀 다름이라고 해봤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인종, 간판에 쓰인 글자, 약간의 시스템 차이 정도였다. 뉴델리역의 혼란은 예전 2011년 9월 런던 히드로에 도착했을 때, 그 때의 아무 것도 몰랐던 막연한 흥분을 다시 느끼게 해줬다.
따라가면서 여기 숙소가 있는 게 정말인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후 델리에 지내면서 한 번 더 놀라웠던 건 그게 델리의 전부가 아니었단 것. 인도는 큰 나라니깐 지역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란 건 알았다. 한국만 해도 좁은 땅덩어리 같은 나라, 같은 민족임에도 서울 부산만 해도 말이 바뀌고 사람들 성향이 바뀌는데. 인도처럼 큰 나라에, 원래 한 나라도 아니었던 곳에서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자연 환경이 다른데 얼마나 다르겠는가. 근데 델리란 도시를 벗어나기도 전에 그걸 느낄 줄은 몰랐다.
동행이 소개해 준 인도인 친구 아비나쉬가 데려간 쇼핑몰은 여느 한국의 대형 쇼핑몰과 똑같았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묵은 델리의 가정집은 서울의 한적한 성북동 정도의 느낌을 주었다. 완전 유사하진 않지만, 서울에서 그나마 가장 비슷한 곳인 것 같다. 뉴델리역 앞 빠하르간즈는 양다리가 없는 소년이 손으로 걸으면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거리는 지금껏 다녀본 서울의 어떤 낙후된 지역보다도 더 낙후되었다. 비주얼로 치면 사진으로 본 전후 한국 정도의 느낌이었다. 델리라는 한 도시 안에서 1950년대와 2010년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바라나시 갠지스강
흔히 생각하는 인도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바라나시는, 상상대로였다. 거리를 걸으려면 지뢰찾기에서 지뢰 나오는 빈도 정도로 똥을 피해야했다. 어떤 사람은 들어가서 몸을 씻고 있고, 화장터에서는 시신을 불태우며 제를 지내고 있었다. 건물들은 영국 지배기, 혹은 그 전에 지어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낡았다. 몸이 상당히 기형적으로 불편한 사람도 흔히 마주쳤고, 많은 사람들이 아파보였다. 들개들은 모두 피부병을 갖고 있었고 수시로 몸을 긁어댔다.
나도 덩달아 몸이 아팠다. 막 아프다기보단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계속 있다간 골골댈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마음은 편했던 건 흔히 말하는 힌두교의 성지 갠지스강이라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던 건지, 정말 바라나시만의 매력이 있는 건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갠지스강 상류에서는 폐수를 무지막지하게 버린다고 한다. 단순히 똥과 시체로 더러운 게 아니라, 온갖 중금속 등이 가득하다고 한다. 바라나시가 아픈 이유인 것 같다. 떠나서 생각해보면 바라나시는 버림받은 성지였다. 혹은 인간이 파괴한 성지거나.
제주도라고 해도 그럴 듯한 카주라호 르네 폭포 가는 길
카주라호는 한적하고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카마수트라 조각들로 장식된 사원으로 유명하다. 정작 사원은 볼 게 거의 없었다. 500 루피, 만원에 가까운 돈을 내고 10분 만에 보고 나왔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방문한 르네 폭포에서 사파리 같은 체험을 하고, 아주 멋진 경관을 봤다. 가는 길의 유채꽃밭은 제주도에 온 느낌을 줬다. 릭샤를 타고 국립공원에 방문하니 사슴, 원숭이 같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건기라 폭포의 물은 말랐지만, 물이 말라 드러난 계곡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사실 한라산 관음사 코스 가는 길이랑 살짝 비슷한 느낌도 있는데, 다르긴 다르다.
근데 카주라호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인도에서 호객 행위는 흔하고, 그냥 지나가는데 인사하는 경우도 흔하다. 다른 나라에서도 관광객 상대로 호객이야 당연한 거고, 가끔 한국 사람한테 니하오 하는 거 싫다고 하는 사람들 있는데 우리도 백인이면 다 영어 쓰는 줄 알고 헬로 한 적 있지 않나? 근데 카주라호는 정말 짜증날 정도로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말을 걸더라. 사람들의 느낌이 순수한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인드나 친절함보다는 상당히 찌들어있다는 느낌이었다.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으레 기대하는 순박함이 카주라호에는 없었다.
델리, 바라나시, 카주라호 모두 다 모순된 곳이었다. 근데 그 모순이 여기서는 모순이 아니다. 그냥 원래 그런 거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고 하면 너무 궤변이고, 당연하지 않은 것의 당연함의 범위를 많이 넓혀줬다 정도로 표현하고 싶다.
비틀즈가 바라나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한 줄의 문장을 어디서 봤다. 그 영감이 막연히 Let it be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던 것 같다. 비틀즈가 방문한 게 1968이고 Let it be가 1970년 앨범이니 맞겠지 뭐. 많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인생의 모습에 대해서도. 바라나시 사람들은 아파도 행복해보였다. 내 생각엔 여기서 어떻게 살지 하는 생활들이 그 곳의 삶이었다. 그리고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들의 삶은 정말 Letting it be처럼 보였다. 뭐 어때? 싶은 것들.
토굴 같은 젬베 교실의 30년은 안 빤 것 같은 매트리스도, 새들을 잡아가둔 자연친화적인지 안 친화적인지 모를 비지엠과 양철 지붕 위에서 원숭이가 쿠당탕 대는 소리를 함께 들으며 하는 요가 수업도,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제대로 청소 안 했을 것 같은 일본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까지. 그냥 원래 그런 거다. 굳이 문제도 아니다. 가만 냅두면 된다. 그것이 그 곳의 삶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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