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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2018 인도

[인도] 푸쉬카르에서 :: 인도의 현재가 자극하는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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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 호수

푸쉬카르 호수


지금 푸쉬카르라는 동네에 있다. 석촌호수의 반의 반 정도 될 것 같은 아주 조그만 호수가 있는 동네다. 뭘 하러 오는 곳은 아니고, 그냥 쉬러오는 곳으로 한국 여행자들한테 인기가 좀 있는 것 같다. 기차역도 없어서 버스를 타고 좀 더 들어와야 하는 정말 작은 동네다. 여기선 뭘 하기보단, 뭘 안 하며 지내는 것에 초점을 맞출까 한다. 아그라에서도 타지마할을 본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안 하긴 했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거지만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인도 또 언제 다시 온다고 이것저것 좀 봐두는 게 낫지 않을까. 아그라는 그래도 여러 역사적 건물들로 유명한 곳인데. 근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느낀 건 역사 명소든 자연 명소든 간에 봐봤자 나 저거 봤다랑 사진 정도 밖에 안 남더라.


물론 가끔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들이 있긴 하다. 이런 자연 환경에서 어떻게 인간이 적응하여 이런 문화를 나았는지, 그런 거 생각해보는 건 재밌다. 이 말도 안 되는 건물을 지은 사람의 권력은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건축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일을 했는지, 이 건물이 유적지가 아니라 사용되는 건물일 때의 모습 등 생각해볼 거리는 많다. 근데 그 상상이 늘 떠오르는 건 아니니깐. 억지로 하면 재미없다. 게다가 나이먹으면서 상상력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감흥이 없어지기도 하고. 많은 걸 보고 듣고 머리에 집어넣으며 지식이 늘어나는만큼 새로운 것도 사라지고 흥미도 사라진다.


푸쉬카르로 가는 버스 안에서

푸쉬카르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래서 이제의 여행은 과거보다는 현재의 모습에 더욱 흥미가 있다. 특히 인도는 더욱 그렇다. 물론 인도의 과거도 아주 오래 된 고대부터 많은 민족과 종교, 문화가 태어난 곳인만큼 흥미롭긴 한데 공부하기엔 너무 방대하다. 반면 인도의 현재는 그냥 내가 방 밖으로만 나가면 배울 수 있으니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상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부촌에 몰려있는 벤츠, 아우디 같은 고급 자동차부터 노숙자보다 더 신기한 도로 옆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까지 갭이 너무나 큰 동네다. 지금까지 생활해본 인도 물가로는 자동차는 커녕 아이폰조차 '평범하게 일해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울의 집처럼 느껴진달까. 분명 존재하고 눈에도 많이 보이는데 '정말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들은 살 수 없으니깐. 그걸 사는 사람들은 인도라는 곳에서 태어나 어떤 삶을 살아왔을 것이며, 그걸 사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 것인지. 그들은 분명히 서로의 존재를 우리가 월드비전 후원하는 아프리카 아이나 북한 주민 인지하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인지하고 있을 텐데, 자기 자신의 삶과 상대방의 삶에 대해 각각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푸쉬카르 길거리 과일상

소가 배고플까봐 주는 건지,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건지 과일 던져주던 아저씨


사실 내가 삶이 좀 더 윤택하다고 해서 나보다 좀 많이 덜 윤택한 사람에 대해 책임감이든 연민이든 혐오든 뭐든 간에 어떤 생각 같은 걸 갖는 게 자만일 지도 모른다. 내가 너보다 낫네 하고 자위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걸 수도 있고, 그런 너를 도와주는 나는 착한 사람이라며 자존감을 찾는 행위일 수도 있고, 불만없이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한테 넌 틀렸어 나처럼 살아야 돼라고 가르치는 꼰대짓일 수도 있다. 인액터스를 하면서 한 때 많이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나 제일 우려했던 부분은 꼰대짓이다. 행복감은 사람이 좀 그럴 수도 있고, 사실 난 대부분의 이타심은 그걸 행하는 내 모습에서 만족하는 어찌 보면 위선적일 수도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로 인해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면 좋은 거잖아. 문제는 꼰대짓이다. 이건 반드시 윈-윈이 되지는 않는 구조다. 루즈-루즈가 되기도 쉽다. 근데 인도의 현재는 '절대적이다 싶을 만큼 보편적인 가치 하에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히 틀린 점'을 꽤 종종 보여준다.


그냥 이런 생각들을 요즘은 하고 있다. 딱히 어떻게 해야 한다, 어떻다 라는 결론이 있는 내용은 아니다. 그 틀린 점을 내가 인도에서 바꿀 것도 아니고, 에어비엔비에서 묵어보니 인도 상류층들도 잘 인식하고 노력하는 중인 것 같다. 무언갈 봐야한다는 의무감 없이, 그저 나와서 사람 구경만 해도 무언가 보는 게 되는 푸쉬카르란 동네에서 정리해본 인도에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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