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형이 오늘 잠실에서 인적성을 본다고 끝나고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맛집 찾아다니기 참 좋아하는 형인데 예전에 알려준 곳. 멘야하나비. 마제소바라고 하는 건데 나로선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음식이었다. 야끼소바 같은 맛이 날 것 같이 생겼다. 근데 계란이랑 파가 송송송송 들어간 걸로 보아 좀 더 날 것의 느낌. 차가운 음식일 줄 알았는데 또 뜨거운 음식이란다. 이번에 기회가 돼서 드디어 가보았다. 여기도 수요미식회 나온 집이란다. 티비를 원체 안 보는 데다가 음식 프로그램은 전혀 안 믿는다. 근데 수요미식회 나왔다는 집들은 갈 때마다 만족. '맛' 자체가 좋은 곳들이더라 대부분.
안타깝게도 외관 사진을 못 찍었다. 그래서 지도로 대신한다. 위치는 석촌호수 동호 근처. 형이 4시 30분에 끝나서 다섯시 조금 전에 와있었고, 난 5시 5분 정도에 도착했다. 6시에 오픈이라는데 이미 약 20명 정도, 8~10팀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바로 그 근처에 있는 일본 가정식 만푸쿠를 보고 왔는데 거긴 2배 이상의 줄이 이미 서있었다. 형이랑 벤치에 앉아서 얘기나 하면서 50분을 보내고 6시 오픈해서 입장. 그 때 뒤를 돌아보니 내가 처음 왔을 때보다 두, 세 배 쯤 되는 줄이 만들어져 있더라..
라멘집이나 미분당, 미정국수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판기 방식. 메뉴는 비교적 단촐하다. 마제소바의 종류가 몇 개 있고 라멘 하나. 그리고 맥주, 계란 등의 사이드 메뉴. 마제소바의 종류가 많아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에서 조금씩 변형된 수준. 파를 더 많이 넣거나 간 고기 대신 통고기를 넣거나 정도. 그나마 다른 종류라고 할 만한 게 카레가 들어간 마제소바.
기본적으로 마제소바에는 민찌(간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도니쿠 마제소바는 민찌+도니쿠(두꺼운 돼지고기)의 조합인데 15개 한정판매라고 들어갈 때 말해주셨다. 다행히 우린 15인 안에 간신히 들어 도니쿠 2개 주문! 그리고 잘 먹는 남자 둘이니 카레 마제소바도 한 번 주문해봤다.
내부는 전형적인 라멘, 우동집 다찌. 세보진 않았는데 15석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냥저냥 깔끔하다. 나한테 맛집은 대개 낡고 허름한 곳이라 왠지 이런 곳은 맛있어보이는 느낌은 잘 안 준다. 그냥 못 먹어본 외국의 새로운 음식의 '신선함'이지 '맛'을 주는 곳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새로 생긴 곳보다는 원래부터 늘 그 자리에 쭉 있어왔던 곳을 찾아다니는 편.
알고보니 일본 식당의 한국 지점이었다. 일본에 7개 정도가 있고 서울에 하나. 신주쿠라고 써있는 걸 보니 도시가 아니라 동네 이름을 써놓은 것 같다.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대충 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 것 같아서 기억은 안 난다. 다만 마제소바는 나고야 지역이 원조라고 한다.
주문했던 도니쿠 마제소바 두 개와 카레 마제소바가 나왔다. 비주얼은 꽤나 좋다. 고기도 듬뿍 들어있고 계란 노른자가 맛을 한 층 깊게 해줄 것 같다. 그리고 잔뜩 들어있는 파가 그 느끼함을 잡아주고. 김은 원래 어디에 들어가도 맛있다. 다진 마늘도 꽤 많이 들어가서 파와 함께 느끼함을 잡아준다. 포인트는 다진 마늘 옆의 노란 가루. 고등어 가루라고 한다. 가쓰오부시 비슷한 건가 싶다. 후리가케로 뿌려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저 가루만 맛 보지는 못 했다. 왜냐면 다 비빈 다음에 저게 고등어 가루라고 형이 알려줬거든. 양도 많다.
마제소바 먹는 방법. 그냥 잘 비벼서 먹으면 된다. 마늘 더 달라면 더 주고 밥도 조금 주고. 나는 밥은 안 시켰는데 정말 조금 주더라. 한 주먹이 아니고 거의 한두숟갈 수준. 정말 맛보기로 먹는 거라 충분할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일단 기본적으로 마제소바 양이 많아서. 제일 재밌는 포인트는 저 3번. 자세한 건 조금 이따가 얘기하겠다.
이렇게 비벼서 막 먹으면 된다. 맛있다. 한 입 먹은 소감은 엄청나게 풍부한 맛. 밀도가 높고 볼륨이 큰 무거운 맛이다. 파와 다진 마늘이 저렇게 듬뿍 들어가지 않으면 엄청 느끼하고 금방 질릴 듯. 다행히 향신료들이 밸런스를 잡아준다. 개인적으로 평양냉면처럼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지라 취향에 딱 들어맞진 않는다. 그러나 고기고기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지 좋아할 듯. 운동 엄청 하고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을 때 먹으면 에너지를 입 안에 풍미가 꽉꽉 빈틈없이 들어차면서 에너지를 한 번에 충전시켜줄 것 같은 맛이다. 결론은 맛있고 무지 잘 만든 음식.
제일 맘에 들었던 포인트는 식초. 3분의 1 정도 먹고 식초를 쳐먹으라고 한다. 쳐먹으라고 하면 비속어 같으니깐 쳐서 먹으라고 한다. 나는 시큼한 음식을 엄청 좋아한다. 커피도 산미 있는 걸 좋아한다. 최근에는 복국에 식초를 쳐서 먹는 방법을 알고는 빠져들었다. 샐러드 드레싱은 무조건 발사믹에 올리브 오일. 치킨도 맛있지만 시큼한 핫소스에 버무린 버팔로윙이 역시 최고다. 입맛이 맨날 없어서 그런 건지 항상 신 음식이 그렇게 맛있더라. 마제소바에 식초를 치면 그 무겁고 두터웠던 헤비한 맛이 엄청 산뜻해진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잘 오기 힘들 것 같아서 식초를 더 많이는 못 쳐봤다. 음식 망칠까봐. 전에 복국에 식초 듬뿍 뿌렸다가 기침 켁켁 대느라 먹기 힘들었어가지고. 다음에 또 온다면 처음부터 식초 쳐서 먹다가 3분의 1 남기고 식초 듬뿍 쳐서 먹을 생각이다. 놀라운 맛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으로.
카레 마제소바도 먹었다. 양상추랑 양파가 들어가 있다. 카레향이 은은한 게 매우 좋다. 깍두기랑 먹으면 더 맛있다. 이미 도니쿠 마제소바를 한 그릇 다 먹고 먹은 거라 물릴 법도 한데. 정말 잘 만든 음식이었다. 일단 도니쿠든 카레든 내 취향이랑은 약간 거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요즘처럼 맛집 같은 맛집이 잘 없는 시대에 정말 훌륭한 음식을 하는 집이다. 아마 이 맛이 언젠가 문득 생각나서 엄청 가고 싶어질 것이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재방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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