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홍대에서 일정이 끝나고 저녁 메뉴로 떠오른 건 냉면. 평양냉면을 진짜 너무 무지 좋아한다. 지난 몇 년 간 굉장히 핫한 음식으로 떠올랐는데 그보다 아주 살짝 전부터 좋아했었다. 홍대에서 5시에 끝났으니깐 원래는 합정에 있는 동무밥상을 가려고 했었다. 친구한테 듣고 전부터 가보려고 했지만 합정은 너무 멀어서 올 일이 없었으니깐. 5시 30분부터 저녁 오픈이라 걸어서 가면 딱 알맞겠다 싶어 홍대에서 합정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거짓말 같이 이번 주부터 내부공사로 문을 닫았다. 가는 도중에 블로그로 대충 냉면 비주얼도 한 번 다시 봤는데 어제 올라온 포스팅도 있었건만.
너무 억울해서 광화문국밥에 갔다. 여기도 역시 오늘 처음 가본 곳. 그래도 종로는 홍대 쪽에 비해 자주 가니깐 오늘 동무밥상을 가려고 했던 건데.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 딱 위치하고 있다. 접근성은 매우 좋다. 간판은 매우 올드해서 오래된 식당인가 싶지만 올해 생겼다. 박찬일 셰프가 지난 여름인가 봄인가 오픈한 식당. 요즘 수요미식회니 뭐니 셰프들이 인기가 참 많다. 난 근데 셰프 하나도 모른다. 박찬일 셰프를 아는 이유는 딱 하나, 에스콰이어. 3~4년 정도 남성지 에스콰이어를 구독했었는데 박찬일 셰프가 쓴 칼럼을 항상 재밌게 봤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유명한 사람이니깐 칼럼도 쭉 쓰지 않을까 싶어서. 광화문국밥도 평이 꽤 좋아서 한 번 꼭 가봐야겠다 생각했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굉장히 모순적이다. 오래된 느낌을 내려고 한 새 인테리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별로. 너무 이질적이었다. 오래된 식당은 정말 좋아한다. 을지면옥 같은 곳 얼마나 낡고 못생겼는가. 하지만 그 낡은 분위기에서만도 벌써 내공이 느껴진다. 광화문국밥 역시 그러한 내공이 있는 집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오직 시간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느낌이다.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걸 억지로 가지려고 하면 어설픈 느낌만 난다. 어떤 사람들은 좋아할 수도 있겠다. 평양냉면집 인테리어는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도 깔끔하니깐. 글쎄, 난 돼지고기 먹으면서 돼지 냄새 싫어하는 사람도 잘 이해가 안 돼서.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재밌었던 혼밥용 테이블. 다찌를 두는 곳은 많은데 다찌식 테이블을 둔 곳은 처음 봤다.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혼자 먹는 게 익숙한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일반 테이블이 더 편하다. 4인석이 더 넓고 짐도 둘 수 있다. 혼자 먹는 게 안 익숙한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다. 한 번도 혼자 먹는 걸 의식해본 적이 없어서. 배려라고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나도 뭐 딱히 불편하거나 안 좋은 건 아니다. 굳이 선호를 가르자면 넓은 테이블이 낫다는 이야기. 식당 입장에서 이게 더 공간 활용에 좋다면 이게 낫지.
광화문국밥의 메뉴판. 일단 이름대로 돼지국밥이 메인이다. 참 식당 주인 입장에서 효율적인 메뉴다. 돼지 육수로 국밥도 하고 고기국수도 하고 냉면도 하고. 냉면에 추가할 소 육수 끓이고 고기로 수육도 하고. 국밥 재료로 피순대나 양무침, 술국도 하고. 저염명란오이무침은 신기하다. 다음에 종로에서 술 먹을 일이 있으면 꼭 먹어보고 싶다. 사실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메뉴. 다음에는 돼지국밥을 먹으러 와야겠다. 피순대도 다른 테이블에서 먹는 거 봤는데 엄청 맛있어보였다. 내가 순대를 별로 안 좋아함에도 맛있어보였다는 건 그만큼 비주얼이 좋았다는 뜻. 양무침과 술국 시켜두고 소주 먹어도 너무 행복하겠다. 물론 수육도. 한라산도 파는 걸 지금 봤다. 최고의 메뉴판이다.
내가 주문한 평양냉면. 물론 물냉면이다. 사실 순면을 먹을까 고민을 했다. 순면은 순면대로 거치고 강한 메밀맛이 좋고 일반 냉면은 또 부드럽고 육수와 조화로워서 좋다. 다행히 광화문국밥은 순면은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해서 고민의 여지를 없애줬다. 광화문국밥의 평양냉면은 비주얼적으로 육수는 우래옥, 면은 봉피양을 닮았다. 나오자마자 국물부터 쭉 들이켰다. 희한하게 와사비향이 났다. 딱 먹는데 묘하게 일본의 느낌이 났달까. 다른 재료일 수도 있겠는데 와사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걸 제외하면 비주얼대로 우래옥과 비슷한 육수. 그닥 밍밍하지는 않은 편이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진한 육수. 그리고 약간 시큼했다. 예전에는 우래옥 냉면에 식초를 아주 살짝 타서 먹었었는데 그것과 비슷한 정도의 산미. 워낙 신 음식을 좋아해서 괜찮았다. 면은 비주얼대로 봉피양이나 여의도 정인면옥과 유사했다. 좀 굵지만 메밀 함량이 높아서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좋다.
고명으로 올라간 무와 배추가 아주 맛있었다. 정갈하다는 표현이 딱 좋은 것 같다. 면만 먹을 때 생길 수 있는 심심함을 잘 보완해준다. 특이하게 빨간 무절임을 준다. 저 무절임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아주 잘 만든 무절임이다. 다른 식당에서 만났다면 다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냉면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너무 슬프다. 냉면을 먹으면서 저걸 먹고싶단 생각은 한 번도 안 들었다. 그래도 블로그 때문에 일단 맛을 봐야겠다 싶어서 한 번 먹어봤다. 냉면을 먹기 전이나 먹는 중간에 먹으면 냉면 자체의 맛을 해친다. 냉면을 다 먹은 후에 먹으면 그 여운을 잃는다. 여러 모로 계륵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무절임이다. 맛이라도 없으면 신경 안 쓸 텐데 굉장히 신경을 쓴 셰프의 밑반찬 같아서 슬프다. 칡냉면이랑 먹으면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을 텐데. 너의 손 꼭 잡고 그냥~ 이 길을 걸었으면 내겐~ 너 뿐인 걸~
화룡점정. 고기는 여느 집이나 그렇듯이 소와 돼지. 나는 항상 고기를 마지막에 입에 한 입 넣고 육수를 머금는다. 미스터 초밥왕에서 한 재료에서 나오는 음식들의 조화가 승패를 가르는 키가 된 에피소드가 있다. 고기와 그 고기로 끓인 육수를 한 입에 담으면 발생하는 시너지는 원래 고기가 갖고 있던 맛 이상이다.
그렇게 다 먹었다. 완냉이란 표현도 쓰던데 난 별로 맘에 안 든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한 그릇. 와사비향이 거슬린다면 거슬릴 수도 있다. 매력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매력적인 그런 한 그릇이었다. 평양냉면을 먹을 때 두번째로 좋은 순간이 이 때다. 특히나 그릇을 싹 비울 때의 만족감은 나에겐 특별하다. 게다가 보통의 냉면은 강한 조미료 맛 때문에 국물을 다 비운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더.
그냥 찍어본 광화문 국밥 드시는 법. 따로 양념을 첨가하지 말라는 것이 맘에 든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것저것 양념 쳐서 먹는 음식보다 나온 음식 그대로 먹는 게 좋다. 담백하지만 그 재료 자체의 맛이 살아있는. 요리 자체를 정성스레 해서 맛있는 한 그릇. 몇몇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박찬일 셰프의 이름값은 충분히 한 것 같다. 까기는 쉽지만 만들기 쉬운 요리는 결코 아니다. 그 맛을 결코 아무나 낼 수가 없다. 을지면옥, 우래옥 등에는 좀 미치지 못하지만 정말 훌륭한 음식이었다. 냉면 자체가 원래 만들기 까다로운 고급 음식인데 고급 셰프가 훌륭하게 재현해냈다. 맛집의 이름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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