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과음을 했다. 양주가 무한인 파티에서 먹고 나와서 다른 데 가서 보드카 또 먹었다. 다음 날 좀 괴로웠는데 사정상 해장을 할 수가 없었다. 해장으로 제일 좋아하는 건 복국. 예전에는 쌀국수였는데 얼마 전 집 앞에 생긴 5,800원짜리 복국을 먹게 된 이후로 복국에 빠졌다. 최고다. 복국복국 봄이 오네. 다른 대안으로 콩나물국밥, 간단히는 토마토주스도 있긴 한데 그 어느 것도 먹지 못하고 차돌박이를 먹었다. 최악.
일요일에 못한 해장을 화요일에나 하게 됐다. 사실 몸은 멀쩡했는데 그냥 복국이 먹고싶어서. 집 앞으로 갈까 하다가 밖에 볼 일이 있던 김에 몇 군데를 찾아봤다. 대부분 점심 특선이라 1인 복국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강남역에 위치한 황금복국. 위치도 아주 좋았다. 강남역 6번 출구 바로 앞이었다. 맛있는 녀석들이 왔다간 곳이라고 한다. 티비에 나왔다고 맛있는 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게다가 맛있는 녀석들은 맛없는 걸 줘도 맛있게 잘 먹을 것 같다. 그래도 맛있어보여서 먹으러 갔다.
황금복국의 메뉴는 위와 같다. 복 요리 외에도 안주로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있다. 물론 기본 복 요리에도 충실하다. 복 불고기, 복 수육, 복 지리, 복 사시미, 복 튀김, 복껍질무침까지. 어우 생각만 해도 맛있겠다. 복껍칠무침에 소주 끝내주겠다. 지리 하나 시켜놓고 술 먹으면 먹으면서 술이 깰 거다. 복어가 독이 있어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먹을 방법을 궁리한 이유를 알겠다.
내부는 깔끔하다. 내가 앉은 곳이 가게 중간쯤이라 이만큼이 더 있다. 따로 룸도 있어서 조용하게 식사하기에도 좋다. 시간대가 애매한 다섯시 쯤이어서 평소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꽤나 맛있었으니 평소에도 아저씨들 반주하러 오지 않으려나 싶다.
식사가 나왔다. 내가 주문한 건 은복지리+강된장 비빔밥. 가격은 11,000원이었다. 복 종류가 많던데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비싼 복은 더 맛있으려나.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먹어봐야겠다. 사실 돈 벌면 복지리보다 사시미가 너무 먹고싶다.
우선 복국부터 떠먹어보았다. 맑다. 한 입 먹으니 복과 미나리, 콩나물, 무와 갖은 양념이 온몸을 정화해주는 느낌. 나이가 먹은건지 빨간 국물보다 맑은 국물이 더 좋다. 기분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집 앞 5,800원 짜리보다 더 국물이 진한 느낌이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복초장이라고 한다. 양념이 초장, 간장, 식초가 있었다. 복초장은 미나리와 콩나물 등 야채를 찍어먹으라고 한다. 이게 제일 맘에 들었다. 콩나물은 좋아하지만 미나리는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먹긴 먹는데 그냥 있어서 먹는다. 그런데 초장을 찍으면 이 미나리를 아주 맛있게 소모할 수 있다. 미나리의 온갖 성분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복은 복간장에 찍어먹으란다. 근데 나는 복도 초장에 찍어먹는 게 더욱 맛있었다. 차라리 간장에 와사비를 풀어먹으면 더 나았으려나. 국물을 낸 복 자체의 향이 약한 편이라 간장을 찍으면 좀 밍밍하다.
조금 먹다가 식초를 푼다. 사실 따로 접시에 국물을 퍼서 거기에 식초를 뿌렸다. 사진은 컨셉용. 식초 조절이 미묘해서 따로 퍼다가 식초 치는 게 훨씬 안전하다. 사실 내가 복국에 빠진 건 다 식초 때문이다. 원래 시큼한 음식을 좋아한다. 집 앞 복국집에서 처음 복지리에 식초를 쳐서 먹는 걸 알았다. 한 번 먹어보니 신세계였다. 해장용 음식의 끝판왕이랄까. 베트남 쌀국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양파절임과 레몬을 팍팍 넣은 시큼함과 숙주의 조화 때문이었다. 그걸 뛰어넘는 복 국물.
강된장 비빔밥. 집 앞 복국집은 고추장 비빔밥을 준다. 원래 복국과 비빔밥을 같이 먹는 바리에이션이 있는 걸까. 복국 자체가 밥 말아 먹기에는 좀 심심해서일까. 고추장보다는 된장이 맑은 복국에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강된장 자체가 매우 맛있는 편이었다.
쓱쓱 비벼서 먹었다. 여기에 미나리를 넣어도 맛있겠다. 반찬으로 된장국 끓인 시래기 같은 게 있던 데 그걸 넣어서 먹어도 좋겠다. 아쉬운 점은 비빔밥과 복국을 나는 별로 조화롭게 느끼지 못한다. 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두 음식을 시켜서 먹는 것 같은 기분. 서로 다른 음식이라도 하나처럼 느낄 수 있는 마리아주가 중요한데.
와사비는 복어에 올려먹어보았다. 생와사비다. 난 생와사비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아무래도 간장에 풀어먹으라고 준 것 같긴 하다. 근데 먹었는데 매운 맛은 싹 다 날라가고 향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일부러 이렇게 날린 건지, 아니면 보관을 잘 못한 건지는 모르겠다. 와사비의 매운맛은 원래 휘발성이 강하다.
밑반찬들. 비빔밥에 넣어먹는 강된장, 된장국 건더기 같은 것, 오뎅과 깍두기. 반찬도 맛이 있었는데 복국에는 다른 양념된 반찬들이 손이 안 간다. 그냥 맛이나 봤다. 저 된장국에서 건져낸 시래기 같은 건 너무 짰다. 강된장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보충용일까.
결국 깨끗하게 다 비운 복국과 비빔밥. 너무너무 맛있었다. 만약 숙취가 남아있었다면 이걸 먹고 한 번에 싹 날라갔을 것이다. 최고였다. 땅값 때문에 비싼 것도 있겠지만 비싼 만큼 집 앞 복국집보단 좋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비싸고 머니 다음부터는 집 앞 복국집에 가야겠다. 하지만 강남에서 해장을 해야한다면 앞으로는 매 번 여기로 올 것이 분명하다. 맛집 인정. 최고야 짜릿해. 아 맞다. 지금 지도를 보고 생각났는데 체인점이었다. 삼성동이랑 여의도, 종로엔가 가게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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