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을 그닥 자주 가지는 않는다. 일단 멀다. 올해 멍청하게도 얼굴에 살짝 화상을 입었다. 입 바로 옆이라 걱정이 쓰여서 화상전문병원을 알아봤다. 집 가까운데 한 군데 있긴 했으나 큰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우선이라 나랑은 맞지 않았다. 신촌에 있는 한 피부과가 화상 전문이고, 흉도 안 남게 잘 신경써주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은 신천, 신촌은 같은 2호선이지만 정확히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멀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꼬박꼬박 가야했다.
혼밥을 자주 하긴 하는데, 신촌에서 딱히 맛있는 집이 없었다. 신촌 맛집이라고 하는 곳 중에 맘에 드는 데가 어째 하나도 없었다. 그냥 돌아다니다가 신촌역 바로 근처에서 딱 봐도 맛있게 생겼다 싶은 집이 보였다. 바로 신촌수제비.
일단 내가 외관이 생각하는 맛집의 기준에 너무 적합했다. 적당히 낡고 오래되었으나 관리가 잘 되어있는 집.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수제비를 넉넉히 주고 배고프면 더 줘서 오랜 시간 동안 연세대 고학생들의 배를 채워준 집처럼 생겼다. 그냥 외관에서 본 느낌이다.
딱히 엄청 맛있는 수제비집이라거나 그건 아니다. 국물도 살짝 밍밍한 편. 호박과 당근 고명 조금 올라가 있다. 수제비도 그냥 수제비다. 그닥 쫀득쫀득하지도 않다. 수제비는 역시 대치동 은마 상가 지하의 산월수제비를 못 이기긴 하는데, 다른 동네 수제비도 못 이길 맛이다. 근데 묘하게 땡긴다. 내가 수제비를 원래 좋아하긴 하는데 신촌에서 혼자 밥 먹으면 2번 중에 1번은 이 집에 가는 것 같다. 1번은 그냥 저번에도 먹었으니 또 먹기 그래서 가는 정도?
기본 찬은 김치와 단무지가 전부다. 김치는 식탁에 있어서 양껏 퍼가면 되고 단무지는 따로 주신다. 그리고 다데기가 있는데 안 먹어봤다. 김치도 그냥저냥 심심해서 맛있다. 근데 수제비가 슴슴하니 김치라도 좀 간이 빡 들어가 있으면 좋을 텐데 같이 심심하다. 밥 나오기 전에 김치만 집어먹기에는 좋다. 적당히 달달하다.
희한하게 단무지랑 먹는 게 더 맛있다. 사실 단무지랑 먹으면 맛있다는 건 맛이 별로 없다는 얘기인데 보통.. 싱겁다고 해야하나. 단무지가 안 어울리는 음식이 거의 없다만, 그냥 단무지 자체의 MSG 때문이라.
전반적인 평은 희한하게 맛은 그닥 없는데 계속 찾게 되는 집. 누군가에겐 추억의 식당일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에 공부하다가 배고플 때 가서 먹고 오는? 물론 그러기엔 학교 앞에서 거리가 좀 멀다만. 내가 연세대를 안 다녀봐서 잘은 모르겠다. 쓰고보니 그닥 좋은 말은 못했는데, 가볼 만 하다. 양도 의외로 많다. 먹어도 먹어도 수제비가 쉽게 줄지 않는다. 물론 줄긴 준다.
신촌역 2번 출구 나와서 바로 좌회전 하면 골목에 있다. 그 옆에 잔치국수 파는 집도 꽤나 비슷한 부류의 집처럼 보였다. 한 번 가볼까 했는데 계속 수제비집으로 들어가서.. 아, 메뉴는 수제비와 김밥이 전부다. 정말 맛집의 기준을 많이도 충족시키지만 정작 음식 자체는 그닥인 희한한 식당이었다. 다음 번에 산월수제비나 한 번 오랜만에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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