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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밥

[서울의 냉면] #2 :: 슴슴하지만 꽉 찬 을지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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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면옥 간판

을지로 한 가운데, 서울 느낌이 물씬 나는 을지면옥 간판


서울의 냉면 두번째. 사실 봉피양 다음을 꼭 을지면옥으로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집이기 때문. 요즘 종로 을지로 쪽 가기가 힘들어서 늦어졌다. 서울역 간 김에, 필동면옥 대신 일부러 을지면옥까지 다녀왔다.


을지면옥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처음 먹은 평양냉면이기 때문이다. 항상 처음은 인상깊다. 2012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 휴가 나올 때마다 한창 맛집 찾아다니던 때였다. 손님은 나 말고 두 테이블 정도? 혼자 소주 먹는 할아버지랑 둘이 소주 먹는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한 3년은 거의 그런 풍경이었다. 요즘 갈 때마다 바글바글한데 개인적으로는 그 때가 좋았다.


보통 평양냉면의 첫인상은 슴슴하다는 것이다. 의정부 평양냉면, 을지면옥, 필동면옥이 같은 집안인데, 이 계열 냉면이 특히 그렇다. 앞서 포스팅한 봉피양과 비교하면 국물 색깔도 향도 맛도 엷은 편이다. 평양냉면에 대한 불호는 대개 고깃집 냉면 등 익숙한 '냉면'의 자극적인 맛을 기대하며 입에 집어넣다가, 혀를 때리는 맛이 없다시피 약해 인지부조화가 와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을지면옥 입구


개인적으로도 확실히 기대한 맛과는 달랐다. 근데 난 오히려 이 슴슴한 맛이 너무 좋았었다. 혀에는 별 자극이 없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맛이 차올라온달까. 고깃집 냉면 국물은 입가심으로 아주 살짝 혀에 대는 정도인데, 평양냉면은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게 된다. 면의 메밀향과 뚝뚝 끊기는 식감도 좋았다. 소와 돼지 육수의 적절한 조화도 인상적이었다. 그 때부터 한 5년 간 매일 가도 질리지 않는 집이 됐다.


내가 생각하는 을지면옥의 장점은 식사로도, 안주로도, 해장으로도 좋다는 것이다. 처음엔 식사로 갔다. 그 다음엔 할아버지들이 소주 마시는 것을 보니깐 국물에 소주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 하나 시켰다. 물론 편육도 같이. 술 먹고 난 다음 날에도 생각나더라. 좋은 사람들이랑 냉면 각 한 그릇에 편육 시켜놓고 소주 먹는 게 가장 행복한 시간 중에 하나였다. 수육도 좋지만 편육의 진햔 돼지향이 난 좋더라.



을지면옥 메뉴


을지면옥의 메뉴판. 올해 또 올랐다. 냉면 11,000원이 비싼 가격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2012년에 8,000원이었던 것에 비해 40% 가까이 올랐다. 가고싶을 때 한 번 더 주저하게 된다는 점에서 가격 인상은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상보다는 수요 증가에 따른 인상이라 괜히 아쉬운 점도.


오래 다녔지만 사실 주문해본 건 물냉면, 수육, 편육이 전부다. 다른 건 같이 간 형이 시킨 비빔냉면 한 입 먹어본 정도. 비빔냉면을 시킨 걸 본 것도 그 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비빔냉면도 한 번 시켜보고 싶긴 한데, 그냥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물냉면을 시킨다. 편육은 예전에는 반 접시도 주문 가능했었다. 가끔 통장이 낙낙할 때 혼자 가서 물냉 하나에 편육 반 접시 시키면 좋았는데 올해 가니깐 이제 반 접시가 안 된단다. 뭔가 점점 아쉬워진다. 하지만 그래도 맛있어서 갈 수 밖에 없다.



을지면옥 냉면


을지면옥 냉면 심플하다. 물냉면에 면수와 무절임이 전부. 편육을 시키면 김치와 새우젓도 주긴 한다. 특이점은 고춧가루가 살짝 올라간다는 것. 난 고춧가루를 살짝 더 뿌려서 먹는다. 짜장면에 고춧가루 넣어서 먹는 정도의 개운함을 준다.



1. 국물


을지면옥 냉면 국물


을지면옥의 국물은 확실히 혀에 닿는 맛의 밀도는 낮다. 그러나 벌컥벌컥 들이켜보면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겉에는 비어있지만 속이 꽉 차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계속 마시게 된다. 받자마자 국물부터 다 마시고 리필해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전보다 진해진 느낌을 받았다. 내 기분탓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다보니깐 대중적으로 변해가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 날의 육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 날 그 날 국물의 편차가 좀 있긴 하다. 한 번은 '음 오늘 좀 맛이 없는데?' 싶었는데 같이 먹은 사람들 다 평소보다 별로라고 한 적이 있다. 내린 결론은 아무래도 만들기 쉽지 않은 육수다보니 조금의 편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도 맛이 떨어진다고 느낀 적은 수십번 중에 그 날 한 번 뿐이라,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날이 더울 때도, 추울 때도, 배고플 때도, 술이 먹고 싶을 때도, 해장하고 싶을 때도 생각나는 마법의 국물이라고 한줄평 하고 싶다.



2. 면


을지면옥 면


면은 하얀 편이다. 메밀껍질이 군데군데 박혀있다. 그리고 잘 끊어지긴 하지만 좀 질기다. 밀가루 함량은 30 퍼센트 이상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내 생각이다. 대신 면이 얇아서 끊어지는 정도는 똑같다. 메밀향이 엄청 강하지는 않다. 비주얼은 흔히 생각하는 냉면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 외 큰 특색은 잘 모르겠다.



3. 사이드(반찬, 고명, 면수 등)


을지면옥 고명


아까 언급했지만 고춧가루가 들어있다. 파도 들어있다. 개인적으로는 파가 좀만 적었으면 좋겠다. 냉면답게 계란도 들어있다. 깨도 좀 들어가 있다. 그리고 돼지 두 점과 소 한 점이 들어있다. 돼지가 더 향이 진해서 맛있다. 맨 마지막에 마무리로 국물과 함께 먹어주면 냉면의 여운을 오래 즐길 수 있다.


을지면옥 무절임


을지면옥 면수


무절임은 여느 집이 그렇듯 슴슴하다. 기다리는 동안 면수와 무절임만 먹어도 좋다. 술을 먹는 날에는 일단 무절임이 나오면 한 잔 하기 시작한다. 편육에 새우젓 올리고 무절임 하나, 김치 하나 함께 먹어주면 끝내준다. 면수라는 건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이건 확실히 첨에 좀 이상했다. 육수의 맛을 기대했으니깐. 근데 계속 먹다보니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계속 마시게 된다. 우주의 맛이다.




4. 기타(분위기, 교통 등)


을지면옥 내부


평양냉면 식당의 분위기는 대개 양극화되는 것 같다. 우래옥, 봉피양처럼 고급에 깔끔하거나 을지면옥처럼 추레(?)하지만 편하거나. 개인적으로는 이 분위기가 더 좋다. 편하게 소주 마시면서 시끄러워도 주변에 폐가 되지 않는. 다만 분위기에 비해서 가격은 고급이다. 교통도 매우 좋다. 을지로3가역 5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있다. 정말 바로 앞이라 잠깐만 걸어도 지나친다. 서울 도심지 청계천 아래, 게다가 을지로3가는 2호선과 3호선의 콜라보라 접근성은 엄청나다.



을지면옥 완냉

잘 먹었다.


 국물 

 ★★★★☆

 호불호가 가장 심한 계열일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점. 편차 때문에 네 개 반.

 면

 ★★★★☆

 면 자체는 세 개 반 ~ 네 개. 그러나 이 국물에는 가장 조화롭고 맛있는 면.

 사이드

 ★★★★☆

 Simple is the Best. 본질에 충실한 무절임과 면수. 파가 좀 많은 게 아쉽다.

 기타

 ★★★★

 교통, 접근성 최고. 화장실이 아쉽다. 요즘은 1층 비어도 자꾸 2층 올려보내는 것도.

 총평

 ★★★★☆

 굉장히 호불호가 명확할 수 있는 집. 개인적으로는 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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